스티브 잡스 별세 기타


오늘 큰 별이 졌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하루 종일 뉴스를 도배한 스티브 잡스의 소식을 보며 울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마치 어릴적 삼국지를 읽을 때, 위대한 영웅이 세상을 떠난 대목을 보면
내 주변의 알던 사람이 떠난 것처럼 우울함이 느껴지던 것처럼요.


저는 애플의 팬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어린 시절엔 8비트 애플 II가 아닌 MSX 컴퓨터를 갖고 있어서
애플에 부러움과 시기를 느꼈던 적이 있었습니다. 
국내 PC 이용 정보가 애플 위주였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코너인 월간 컴퓨터학습의 게임분석란이
애플 게임 두 개를 싣느라 MSX 게임을 아예 생략하는 달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가서는 디자인 관련 소프트웨어들이
주로 맥에서만 작동하는 환경에서 꿋꿋하게 PC를 써야했기에
게임도 안 돌아가는 주제에 비싸고 콧대높은 맥을 저주하며
윈도우용 코렐드로우의 파일이 담긴 플로피 디스크를 들고
받아줄 가게를 찾아 충무로 출력소 거리를 어렵게 헤메어 다녀야 했습니다. 

소개팅한 여학생이 컴퓨터는 잘 모르는데
단지 예쁘다는 이유로 클래식 맥을 사고 싶다고 하길래 혀를 끌끌 차기도 했습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디자인 담당의 후배 팀원이 
아이맥의 마우스 버튼 하나로 애처롭게 클릭하면서
포토샵과 일러스트레이터 작업하는 걸 보고
내가 PC로 하면 몇 배는 빨리 끝낼텐데.. 하면서 다시 혀를 끌끌 찼습니다.

아이팟이 나왔을 때에도 그 열광을 이해하지 못했고 
왠만하면 깔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퀵타임을 설치하게 됐을때
끼워팔기(?) 같은 아이튠즈가 강제로 같이 설치돼 또 분노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10년쯤 지난 지금은..

앱스토어 게임 만들어보겠다고 아이팟 터치와 맥북도 샀고,
손에는 아이폰이 있고, 옆에는 아이패드도 있고,
선 없이 깔끔하고 예쁘다는 이유로 마눌님이 쓰고 싶어해서 혀를 끌끌 차며 큼직한 아이맥도 샀네요.
아직 OS X은 안 쓰지만요. 국내 웹의 액티브X만 아니면 이젠 써도 될 거 같습니다.


아이폰을 처음 손에 넣었을 때엔 깊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내 손안의 이거야말로, 인터넷에 이어 또 다시 세상을 바꿀 물건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몇 년 전에 윈도우 모바일이 탑재된 PDA폰을 썼을 때랑은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거든요.

지금도 애플의 기업 철학에 납득이 안 가는 것들은 많지만
이 시대의 위대한 회사 중 하나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런 세상을 만드는 데에는 스티브 잡스 혼자만이 기여한 것은 아니지만
가장 드라마틱한 삶의 흔적을 남긴 아이콘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정적이고 고집 강한 캐릭터, 카리스마와 비전, 쇼맨십.
역경과 역전의 생애, 병마와의 싸움, 세상을 다 가진듯한 전성기에 일찍 세상을 떠난 아쉬움..

매일이 생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하고 떠날 날을 준비하던 그에게, 
사는 동안 쓰지도 못할 8조원 어치 디즈니와 애플의 주식이 뭐 중요했을까요.
애플의 주가 좀 오르고 떨어지는게, 그의 삶을 움직이고 심장을 뛰게 하는 요인은 아니었을 겁니다.
그래서 더욱 짠하게 느껴집니다.

형님, 안녕히 주무십시오. 형님의 말씀들 가슴에 새기겠습니다.

덧글

  • 김윤정 2011/10/06 21:55 #

    크흑 저와 같군요. 저도 애플 제품을 구입한 저를 보고 놀랐습니다. 내 평생 맥 제품을 살 줄이야...
  • 아이러브개돌 2011/10/10 10:03 #

    파란만장한 삶을 살고 불꽃처럼 떠났기 때문에, 잡스횽이 더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는 것 같습니다 :) 여하튼 잡스횽 덕분에 mac을 더 쉽게 만나볼 수 있었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 2011/11/13 17:26 #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Chriel 2011/11/13 17:28 #

    건필 -> 건승 입니다 ㅜ
  • razorblade 2012/01/27 05:56 #

    너는 중딩때 X-II 가지고 있었지만 난 초딩때 청계천표 호환기종이었지만 Apple ][+ 썼었지.
    뭐 사실 게임용으로 쓴 셈이라서 로드런너, 동계올림픽 이런것 했던 기억밖에 없다 ㅠㅠ

    어릴때 남들은 빌게이츠 좋아한다고 할때 스티브잡스 좋아한다고 하면 그야말로 듣보잡 취급을 하더니, 요즘은 회사에 가도 그렇고 언제 스티브잡스랑 그렇게 친하셨다고 ㅠㅠ 스티브잡스가 어쩧고 하는 이야기(실제로는 거의 반대로 가면서) 많이 하니 좀 짜증이 나기도 한다. ㅎㅎ

    나도 시류에 떠밀려 그 공식 위인전기라는것 사서 읽어봤는데, 의외로 나도 모르고 있던 내용들이 많아 놀라기도 했네.

    그나저나 온라인으로 본게 몇년인데 우리 얼굴이나 함 보자. 내가 요즘 가끔 그룹에 회의있어서 삼성동에 나가는데 시간맞춰서 점심이나 할까?
  • 항해자D 2012/01/31 23:02 #

    Chriel// 쓰신 글을 오늘에야 봤네요. 늦게 봐서 죄송합니다. 저도 잘 안 오는 블로그라서 ㅎㅎㅎ
    저한테 해주신 얘기들은 참고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항해자D 2012/01/31 23:03 #

    razorblade// 나 요즘은 휴가중이라 집에서 놀고 있는데, 사무실 복귀하면 함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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